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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 숲의 가격을 묻다

<크리틱> 숲의 가격을 묻다

발행일

2021년 04월 16일

서술

배정한 서울대 조경학과 교수·‘환경과조경’ 편집주간

봄, 바람이 분다. 바람은 움직이는 공기다. 겨울을 밀어내고 봄을 끌어당기는 공기의 움직임에 몸을 맡기고 걷다가 작은 숲에 들렀다. 서울 성수동의 대여섯평 남짓한 도시·건축 전문 갤러리 ‘도만사’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숲, 가게’(4월2일~5월30일). 검박한 상점 형식으로 꾸민 전시장에 겨울이 남긴 숲의 잔해들이 단아하게 진열되어 있다. 아모레퍼시픽 본사, 통의동 브릭웰, 풀무원 물의 정원, 남해 사우스케이프 등으로 이름난 조경가 박승진(디자인 스튜디오 로사이 소장)의 작품이다.

“우리는 모두 숲에 빚진 자들”이라고 그는 말한다. “오늘날의 거대 도시는 숲을 해치고 건설됐어요. 지형과 물길을 자르고 숲을 파헤친 폐허 위에 세운 도시에서 우리는 행복한가요? 도시 저편에, 저만치 물러선 숲이 겨우 자리합니다. 조경의 근본은 숲을 재생하는 것입니다. 그 무한한 가치를 복원하는 것입니다. 값어치 없어 보이는 숲의 잔해를 통해 삶의 본질을 되묻고 싶었어요.”

그러나 ‘숲, 가게’는 교훈과 계몽에 매달리지 않는다. 숲이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아득바득 강요하지 않는다. 틀에 박힌 환경론이나 환경운동처럼 기후변화 시대의 위기 담론을 앞세워 숲의 가치를 부르짖지도 않는다. 지구온난화가 낳은 재앙에서 우리를 구원하려면 두려움을 느끼고 숲을 살려내야 한다는 식의 비명이 아니다. 두려움은 지혜로운 선택을 초대하지 않는다. 두려움을 느끼면 우리는 오히려 문제를 외면하기 마련이다. ‘숲, 가게’는 그 대신 재치와 유머로 숲과 자연에 관심을 갖게 하는 유쾌한 실험이다.

가게에 전시된 숲의 자연물은 열네 종류다. 커다란 바윗돌의 부스러기, 냇가의 작은 돌, 부러진 나뭇가지, 떨어진 잔가지, 낙엽이 뒤섞인 촉촉한 부엽토, 깊은 땅속의 토양, 맑은 계곡물, 숲속에 고인 웅덩이 물, 부스러진 낙엽, 말라버린 열매, 메마른 나무껍질, 시든 풀, 숲속 이끼, 숲의 신선한 아침 공기. 숲이 남긴 이 부산물들은 “아무 쓸모 없고 가치 없어 보이지만, 지난여름 찬란한 숲을 이뤘고 우리의 생명을 지속하게 해준, 고마운 숲의 전사들”이라고 박승진은 말한다.

이 전사들이 미니멀한 시약병과 실험용 접시, 산뜻한 디자인의 상자와 자루에 담겨 있다. 인테리어용 ‘굿즈’로도 손색이 없어 구매욕이 샘솟는다. “전시 제목에 ‘가게’가 붙어 있는데, 정말 파는 건가요?” “네, 그런데 좀 비싸서요.” 만지작거리던 낙엽 패키지의 가격을 뒤늦게 살펴봤다. 200그램 한 봉지에 무려 3600만원이다. 구성 성분은 새잎 돋을 때의 기쁨 20그램, 무성한 지난여름의 추억 15그램, 가을날 화려한 색의 변신 35그램, 초겨울 낙하, 아름다운 마무리 30그램, 지친 나를 위로해준 마음 50그램, 누군가에게는 삶의 희망 50그램이다. “이만큼 크고 다양한 숲의 가치를 공짜로 누리고 있다는 걸 알게 하자는 의도죠.”

‘숲, 가게’의 백미는 가격 산정 방법이 적힌 전시 팸플릿이다. 자연으로부터 그냥 얻은 것들이라 모든 상품의 기본 가격은 1원이다. 그러나 여기에 부가가치 항목들을 곱한 판매 가격은 어마어마하게 올라가며 서로 다르다. 예쁜 병에 담은 ‘맑은 계곡물’ 100㏄의 부가가치 내역은 ‘숲속을 윤기 있고 촉촉하게 만드는 기운, 숲속에서 들리는 맑은 물소리, 목마른 새들은 여기로 모여, 서늘하고 신선한 바람이 불어와, 계곡에서 살아가는 물고기들의 삶터, 청명한 가을 하늘을 되비치는 숲속 거울, 어느 길 잃은 나그네의 완벽한 생명수, 빗물을 끌어모아 강으로, 강으로’다. 이 정도 가치인데 한 병에 14,580,000원이면 너무 싼 거 아닐까?